직접 경험한
날 것의 이야기
네이버 블로그에 기록한 마케팅과 사업 이야기를
트레잇 홈페이지에서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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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보다 중요한 방향, 나는 혼자를 택했다.
나는 1인 광고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과정을 대표인 내가 직접 하기에 많은 광고주를 받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 더 집중할 수 있다. 사실 처음부터 자본을 많이 투자해서 직원을 뽑고, 공격적으로 영업을 해서 파이를 키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나는 리스크가 적은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주식도 분할매수, 분할매도를
홈페이지에서 읽기 →첫 계약 드가자.....
블로그는 21년도부터 했다. 그래서 브랜드블로그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블로그와 브랜드블로그는 비슷한듯 서로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를 할 때 " 목적 "이 중요한데, 일반 블로그와 브랜드블로그는 그 목적이 달랐다. 목적이 다르기에 글을 쓰는 방법이 다르고, 신경써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1인 기
홈페이지에서 읽기 →복학하자마자 또 휴학해?
2024년 12월, 2학년 2학기가 끝났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쯤 종강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손 꼽을만한 중요한 결정을 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광고대행사 업무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 공부하고 어떻게 영업을 해야할지 미친듯이 고민했다. 영업에는 아웃바운드와 인바운
홈페이지에서 읽기 →나는 대학생일까 사업가인가?
작년에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했다. 대행하고 있는 곳들이 많지 않았기에 섣불리 휴학하기는 애매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 광고주들의 블로그를 관리했다. 하지만 소통 부분에서 조금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카톡은 상관없지만 문제는 전화였다. 수업 중간에 계속 전화가 왔다. 광고주의 전화 혹은 광고 상담 전화였기에 그 당
홈페이지에서 읽기 →첫 계약에 들떴지만, 광고주가 돈을 주지 않는다.
당시 첫 계약을 할 때 광고주가 한 말 한마디 때문에 나는 아주 조금은 망설였던 것 같다. 그 말은 다름 아닌 광고비를 한 번에 입금하는 것이 아닌, 두 번에 나누어서 입금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혹자는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할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광고비의 절반은 선지급, 나머지 절반은 마지
홈페이지에서 읽기 →첫 광고계약을 따게 되었지만, 그땐 미처 몰랐다...
광고대행사를 하고 있는 대표님들이라면 아마 처음 딴 계약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계약을 따는 방법은 정말 많다. 인바운드, 아웃바운드로 나누어지며 그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누어지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다. 수많은 방법 중에서 나는 ' 알바몬 '으로 첫 계약을 땄다. 알바몬에는 다양한 블로그 관련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
홈페이지에서 읽기 →처음으로 내가 팔았던 상품은 ㅇㅁㅈ였다.
내가 처음으로 판매에 성공했던 상품은 다름아닌 이미지였다. 그냥 이미지는 아니고, 미드저니로 만든 생성형 AI 이미지. 이걸 어떻게 팔았냐고? 헤어모델을 만들었다. GPT와 미드저니를 함께 사용하면 쉽게 프롬프트를 만들고, 그 프롬프트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객단가가 높지는 않았지만, 보통 10장 이상을 구매한다.
홈페이지에서 읽기 →대부분의 대학생은 취업을 생각하지만...
나는 약간 특이한 점이 있다. 흔히 말하는 반골 기질 . 아주 강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런 면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대부분의 중학생들은 근처 고등학교로 진학을 한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러기 싫었다. 중3 때 나는 300명 중에 20등 내에 드는 성적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서 읽기 →전역 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복학.... 하지만 현실은?
전역을 하고 2024년 3월에 복학을 했다. 21학번이지만 24년도에 처음 대면수업을 들었다... (학교 지리 몰라서 24학번한테 물어보는 21학번) 그 당시 살짝 내가 미쳤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매일 학교에 가는게 일상이었으니, 하루라도 학교를 안 가면 조금 심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면수
홈페이지에서 읽기 →군대에서 내가 미친듯이 했던 것은
요즘은 군대가 정말 좋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려 "휴대폰"이 지급되며, 월급도 병장 기준 150만원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입대를 하는 22년도 5월까지만 하더라도 훈련소에서 휴대폰을 받는거나 병장 월급 150만원은 생각지도 못했다. 훈련소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5분의 통화가 가능했다. 그마저도 전화를 받지
홈페이지에서 읽기 →조금은 막막했고, 군대를 갔다.
어릴 때부터 특별히 꿈은 없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은 있었지만 그걸 직업으로 삼기에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목표는 있었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목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간의 비대면 수업을 마치고 22년 5월에 나는 군대를 갔다
홈페이지에서 읽기 →20살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창업 생각은 1도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나의 꿈은 역사교사였다. 당시 한국사가 너무 재미있었고, 성적도 잘 나와서 역사교사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정확히는 2학년 1학기가 끝날 때쯤 나의 꿈은 조금 변하게 되었다. 한국사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세계사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그때 든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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